IZM 선정, 21세기 첫 25년을 빛낸 뮤지션 25

기념과 기록은 망각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책무다. 이즘이 21세기 가요계 첫 25년을 기억하기 위해 준비한 이번 특집 역시 같은 맥락이다. 25년 동안 수많은 음반과 곡을 타고 음악 후대에 전할 여러 굵직한 사건과 성과가 흘렀다. 아이돌 산업이 가요계의 주축으로 떠올랐고 힙합과 록 역시 기틀을 다지고 명맥을 이었다. 한국 음악은 그들만의 축제쯤으로 여겨지던 그래미 무대에 올랐고 빌보드 정상을 넘본다.
순간마다 여러 스타와 아이콘이 피어났으나 안타까운 선별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설문에 참여한 이즘 에디터와 음악 관계자는 취향과 추억을 묻으며 가장 객관적인 시각을 택했고 다소 익숙하지만 그만큼 무게감을 챙겼다. 뮤지션은 음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시대를 마주한다. 25년을 총체적으로 묶은 21세기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첫 장. 25인의 명단은 시대순이다. (손민현)

크라잉넛
이들의 연차는 한국 인디 신의 나이와 같다. 1995년 홍대 앞 펑크 클럽 드럭에서의 공연부터 이듬해 거리공연으로 존재를 세상에 알린 < 스트리트 펑크쇼 >까지 크라잉넛의 행보는 인디 태동기의 역사와 자취를 나란히 한다. 폭주하는 에너지와 우리말 가사로 휘갈긴 ‘말 달리자’가 대표하는 자칭 ‘조선 펑크’. “닥쳐!” 한 단어에 응축한 혈기는 기성 문화를 벗어나 새천년을 여는 젊음의 독립선언이자 국카스텐, 잔나비, 실리카겔을 비롯한 미래의 록스타들을 깨우는 부름이 되었다.
삶과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커지는 요즘 ’마음 가는 것을 하고 살자’는 명제를 실천적으로 증명해 온 이들의 음악이 유독 고맙다. 이렇게 데뷔 3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다섯 야생마는 지칠 줄 모르고 달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밴드 붐은 온다’의 슬로건을 타고 불어온 열풍도 멈추지 않았던 이 질주 없이는 도래할 수 없었다. 인디의 태초에서도 어쩌면 다시 올지 모를 황금기에서도 뜨겁게 타오르는 그야말로 영원한 청춘이다. (박수석)

윤도현밴드(YB)
YB는 21세기 한국 록의 선두에 존재하는 메가폰이다. '사랑했나봐', '너를 보내고' 등 사랑에 관한 보편적 정서를 담은 곡이나 '나는 나비', '흰수염고래'처럼 꿈을 그리는 청춘 송가만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 모두가 추억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응원가로 전국민 통합에 나섰고, 사회의 병폐를 향해서는 음악을 통해 철저한 비판을 가했다. 그들은 온화한 시선으로 개인을 바라보고, 날카로운 눈매로 사회를 지켜본다. 그리고 크게 소리친다.
그들은 주류 시장과 록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넓은 스펙트럼을 토대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밴드 음악을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4집 < 한국 Rock 다시 부르기 >에서는 20세기 한국 록을 집대성하며 역사를 보존했고, 11집 < Odyssey >에서는 헤비메탈을 시도하는 등 그들의 대중적 인지도는 곧 다양한 록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교두보로 작용했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삶과 세상을 향해 내지른 그들의 포효는 한국 록의 역사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소리로 기록되었다. (김태훈)

자우림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 급하게 지었다지만 이만큼 정체성을 분명하게 담아낸 밴드명이 또 있을까. 붉은색과 푸른색이라는 양극의 빛깔을 대담하게 섞어 왔다. 메인스트림과 인디를 철저히 구분 짓던 1990년대 말, 데뷔곡 ‘Hey hey hey’와 1집 < Purple Heart >를 돌다리 삼아 그 경계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던 것처럼. 이후에도 잔혹동화 또는 낙관적 패배주의라는 상반된 개념이 엮인 세계를 그리며 불확실의 기조를 고수했다. 무언가를 단언하지 않는 바로 이 지점이 많은 이에게 정신적 이완을 가져다 주었다.
결과물을 재촉하는 삶의 객체가 되어버린 누군가에게 확신에 찬 조언 대신 불안함을 내포한 희망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샤이닝’, '스물다섯, 스물하나'처럼 나이 먹지 않을 스테디셀러를 낳아 한국 대중가요에 강세를 부여한다. 특히 27년간 팀을 이끌어 온 프론트우먼 김윤아가 밴드 신에 남긴 공적이 혁혁하다. 그가 써 내려간 스토리는 찌든 사회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르포 같기도, 질곡의 세월을 담은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다. 형태가 어떻든 불특정 다수의 마음 밑바닥까지 가닿는 것은 똑같다. 자우림의 숲에서는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주어가 되어 마법 융단을 타고 돌아다닌다. (임선희)

이효리
실은 투표 과정에서 논쟁이 꽤 오갔던 인물이다. 유기견 보호 운동이나 제주살이 등 이효리의 긍정적 영향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정체성에서 ‘음악인’ 수식어의 비중이 얼마나 차지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불리한 요인은 많다. ‘Get ya’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의 비교 끝에 불명예를 안겼고 4집 < H-Logic >은 여러 수록곡이 표절 판정을 받았다. 예능인 이미지도 크다. 그럼에도 그가 리스트에 오른 것은 한국의 유일무이한 ‘팝스타’이기 때문이다.
셀러브리티라 폄하할 수도 있으나 이효리의 파급력은 음악과 무관하지 않다. ‘10 minutes’, ‘U-go-girl’, ‘Bad girls’ 등 대표곡이 항상 자주적 여성상을 그린 것부터가 절대적이다. 그의 당당함은 노래 안에서도 유효했다. 아티스트로서의 욕심도 간과할 수 없다. 꾸준한 신인 작곡가 기용은 물론 < Monochrome >에서는 인디와 본격 연을 맺으며 싱어송라이터로도 발돋움했다.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함부로 따라잡기 힘든 팝스타, 뮤지션, 그리하여 아이콘이다. (한성현)

김범수
얼굴 없는 가수로 시작해 비주얼 가수라는 재밌는 별명을 얻기도 하며 역경을 딛고 완전한 소리의 장인으로 거듭나기까지 김범수는 언제나 좋은 목소리를 내고자 끊임없이 탐구했다. 보컬의 교과서, 육각형 보컬리스트 등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가 어색하거나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시작부터 기능적으로 뛰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발라드를 넘어 더 넓은 장르도 소화할 수 있는 목소리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고의 세월에 의한 감동이 함께 깃들었다.
가창에 통달한 인물처럼 보임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음성을 연구한다. 화려한 고난도의 창법을 구사하거나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을 즐겁게 만들었던 시기를 지나 팬데믹 시대와 건강 문제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새롭게 찾은 보컬 스타일을 적용했다. 그는 지난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열정 가득했던 10대 후반 시절의 감정을 현재에도 느끼고 있으며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컬리스트라는 직업의 의무감을 아득히 뛰어넘어 노래를 연마하는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행복한 음악 여행자의 삶이다. (김태훈)

박효신
1980년대 이문세와 이광조로 시작해 변진섭, 이승환을 지나 신승훈을 거쳐 조성모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중가요에는 오랫동안 내재해 온 발라드 정서가 존재한다. 속도를 높이고, 쪼개기 바빴던 순간에도 느림의 미학이 가진 최루의 힘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어 다른 양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가 공유하는 애수의 감정이 점차 몸집을 키워 온 알앤비 음악과 융해를 시도하며 새로운 대세를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새천년을 한 해 앞두고 데뷔한 박효신의 지난 25년을 바라보자면 호언을 걸머지고 꿋꿋이 걸어온 그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은 외모 혹은 목소리에 기인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겐 유달리 ‘타고났다’는 표현이 자주 붙었다. 지금은 어떤가. 부여받은 개성의 가치보다 분야를 막론한 예술가로서의 인상이 앞선다. 이젠 ‘끊임없이’와 같은 형용이 더욱 어울리는 모습이다. 거리가 있어도 여전히 친숙하고, 가까워진 만큼 또 신비롭다. 결국 박효신이 남긴 건 변화와 발전을 통한 증명의 과정이었다. 이는 비단 그의 영향권 속 자리 잡은 후대 보컬리스트에게만 적용되는 사실은 아닐 테다. 그저 ‘눈의 꽃’과 ‘야생화’만으로 박효신을 논하기엔 그의 수조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다. (신동규)

보아(BoA)
물려받은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온 꿈을 동경하는 멜로디, '아틀란티스 소녀'였다. UCC가 대세이던 시절부터 숏폼이 지배하는 지금까지 보아는 꺼지지 않는 빛으로 무대를 지킨다. < ID; Peace B >로 파워풀한 댄스와 라이브를 소화하며 강렬하게 등장한 그는 ‘Listen to my heart’로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며 일본이 주도하던 아시아 음악 시장의 유일무이한 솔로 가수로 자리잡았다. 전략 이상의 매력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중학생의 패기는 반짝였다.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20대에 ‘중견 가수’ 타이틀을 얻은 후 지금도 가수이자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꾸준하다. 21세기 한국 가요사의 선두에서 견고하게 빛나는 이름 뒤편에는 삶의 반 이상을 음악으로 녹여내기 위한 노력이 있다. 캐스팅되어 첫 발성을 뱉는 순간부터 해외로 진출하는 그날까지 모두의 염원을 구현한 아이돌이었고, 한일 양국에서 커리어를 기록한 시대의 스타였으며 < Only One >부터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자신을 증명한 뮤지션이다. 보아가 쏘아올린 가장 큰 조각이 수많은 별로 찬란한 오늘날의 K팝을 일궜다. (남강민)

싸이(Psy)
빌보드 싱글차트를 뚫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 3년 전인 2009년에 원더걸스가 ‘Nobody’로 빌보드 싱글차트 76위를 기록했기 때문에 다음 주인공은 분명히 멋진 외모와 세련된 안무를 보여준 보이 밴드나 걸그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슈퍼주니어나 소녀시대, 샤이니, 투애니원이 유력한 후보라고 판단했지만 우리의 예측은 화끈하게 틀렸다.
군중 속에 있어도 위화감 없이 잘 스며드는 외모를 가진 싸이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인기의 법칙과 역사, 과정 등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 유능한 아티스트이자 전략가다. ‘I love sex’, ‘불륜’, ‘계집녀’, ‘나쁜 년’, ‘양아치’는 2001년에 데뷔한 싸이가 그동안 발표한 노래 제목으로 이런 거침없는 태도와 감성은 ‘강남스타일’에서도 그대로 투영해 우아하고 쿨한 척하면서 허영과 허세로 인생을 허비하는 군상들을 뒤틀었다.
7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지킨 ‘강남스타일’ 덕분에 K팝은 전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고 이로써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굵직한 페이지를 작성했다. 싸이가 없었으면 방탄소년단도, 블랙핑크도, 스트레이 키즈도, 트와이스 등도 글로벌 스타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해외 진출과 양적 성장 그리고 시스템과 전술에 일대 변혁을 이끈 싸이는 월드 스타의 면류관을 제일 먼저 받아야 할 나의 그리고 우리 시대의 ‘챔피언’이다. (소승근)

동방신기(東方神起)
이들의 위상은 국내, 해외를 불문한다. 압도적인 수로 알려진 팬덤을 입증하듯 뮤지션, 일반인 가릴 것 없이 팬이기를 자처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문’, ‘Rising sun’, ‘왜’처럼 강렬한 퍼포먼스를 동반하는 노래와 ‘Tonight’, ‘Love in the ice’ 같이 가창력을 요구하는 발라드도 뛰어나게 소화하는 장악력은 여전히 좌중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인기에서 비롯된 영향력의 비대함이 오히려 실력에 비출 스포트라이트를 앗아간 케이스다.
많은 K팝 가수의 일본 활동 항로를 연 팀이기도 하다. 작년 세븐틴, 트와이스가 공연했던 7만 4천 명을 수용하는 닛산 스타디움을 동방신기는 12년 전에 이미 매진시켰으며, 군복무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고 불타며 같은 장소에서 3일을 더 해내 기록을 남겼다. 규모 면에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위치인 도쿄 돔은 33회 채우며 집처럼 드나드는 수준이다. 아이돌 그룹으로서 미개척지를 뚫기 시작해 20년 넘도록 그 정점에 서 있기,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실재하고 있다. (정기엽)

에픽하이(Epik High)
어느덧 힙합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2000년대 초반, 시대는 듀스와 마스터 플랜을 잇는 가교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에픽하이는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두 진영에서 다양성을 꽃피우던 번영기를 이어갈 적자로 단번에 낙점되었다. ‘Love love love’, ‘우산’ 등의 히트곡과 < Remapping The Human Soul >, < [e] >로 대표되는 뛰어난 앨범 단위 작업물을 겸비했기에 주어진 임무다. 랩에 익숙하든, 그렇지 않든 다들 기꺼이 이들의 곡을 즐기며 호응했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잡았다’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그룹인 셈이다.
쟁쟁한 경쟁자를 꺾고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한 ‘Fly’, 무브먼트 크루와 소울 컴퍼니를 한데 모은 ‘Still life’, 정규 10집이라는 금자탑을 세운 < Epik High Is Here > 시리즈까지, 돌이켜보면 21세기 한국 힙합 역사에는 항상 에픽하이가 존재했다. 환경 변화와 온갖 누명을 겪으며 일궈낸 열매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르의 척추이자 다리가 되어 주었기에 우리는 ‘K-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에픽하이의 이름을 당당히 내걸 수 있다. (박승민)

다이나믹 듀오(Dynamicduo)
미국도 안 가봤다는 친구들이 근사하게 이스트 코스트 힙합을 구사해 다수를 놀래킨 시비 매스(CB Mass) 첫 앨범이 2000년이고 입소문 바이럴로 돌아온 곡 ‘AEAO’가 2023년이었음을 따지면 최자와 개코의 이력은 자그마치 24년에 걸친다. 게다가 같은 해 이영지와 호흡을 고른 ‘Smoke’가 댄스 챌린지 열풍을 초래하면서 그들은 힙합과는 연이 적은 장수의 행복을 누렸다. 유통기간과 생명력이 짧은 곳에서 마흔을 훨씬 넘긴 나이와 역주행은 그냥 흐뭇하다.
힙합 1세대의 재조명까지 불러낸 이런 부러운 역사의 조성은 그들 음악 근저에 보편의 정서와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메시지 전달에 재미를 병치해 그간 힙합의 일방향성 일회성과 작별하면서, 똘끼와 이팔청춘과 힙이 생존조건인 풍토에 파열음을 냈다. 다듀에 의해 젊음과 어른이 능동적으로 함께 참여하는 세대동행이 힙합에서도 어색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랩이 풍만한 대중적 접점을 지닌 가치재라는 상식은 그들이 획득한 전리품이다. (임진모)

윤하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음악이란 우주에서 윤하는 꾸준하고도 또렷하게 관측된다. ‘기다리다’의 추진력이 풋풋한 사랑의 록 ‘비밀번호 486’에 날개를 달아 당시 대중음악계엔 보이지 않았던 ‘여성 록 아티스트’의 항로를 열었다. 이후에도 부지런히 공전했다. 소속사 갈등과 건강 문제로 흐릿해질 법했으나 매년 성실하게 록과 발라드를 넘나들며 신곡을 발표한 덕분에 안정적으로 궤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맑은 음색이 수놓은 길에 감정의 스펙트럼이 펼쳐진 찬란한 퍼레이드다.
시간이 흘러도 정도(正道)를 이탈하지 않았다. 후크 중심의 짧은 곡이 범람하던 2020년대 5분이 넘는 ‘사건의 지평선’이 그 증거다. ‘우주여신’이 가져온 낯선 천문학 개념이 서서히 일상에 녹아드는 동안 발산한 한국어 가사는 빽빽한 영어 성단 속 진정한 K팝의 품위를 가리켰다. 15년 만에 다시 오른 정점, 격변하는 유행 속 흔들리지 않았기에 마주한 위치. 아련한 감성으로 순수의 가치를 지켜낸 윤하는 앞으로도 지지 않을 별이다. (정하림)

빅뱅(BIGBANG)
달랐다. 빅뱅은 기존 K팝 아이돌의 전형을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진형을 구축했다. 단순히 십대 문화만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유행 최전선에서 대중을 이끌었다. 학창 시절 각자 좋아하던 팀이 성별에 따라 나뉘던 때에도 빅뱅은 만인이 즐길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다. 2007년 EP < Always >의 타이틀로 거짓말처럼 대박을 터뜨린 뒤 이듬해 내놓은 이문세의 ‘붉은 노을’ 리메이크로 틴 팝 스타를 넘어 보편적 지위에 올라섰다.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무대를 휘젓던 불량소년들은 YG 엔터테인먼트를 대형 기획사로 일으켰다. 힙합과 전자 음악을 기반으로 트렌디한 사운드를 선보이던 이들에게는 ‘간지’, ‘스웩’, ‘힙하다’ 등의 수식이 늘 따라다녔다. 특히 리더 지드래곤은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며 아이돌이라는 고정적 관념마저 가뿐히 뛰넘었다. 그렇게 빅뱅은 획일적인 K팝 그 초기부터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독보적으로 증명했다. (임동엽)

원더걸스(Wonder Girls)
항상 느끼는 것은 이들이 의외로 저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2009년 감행한 미국 진출을 스스로도 실패라고 규정한 탓일까, 데뷔곡 ‘Irony’로 시작해 아침뉴스마저 장식한 UCC 열풍의 시초 ‘Tell me’와 ‘So hot’, ‘Nobody’의 연속 공습은 모두가 인정하나 그다음의 커리어는 주춤했다는 각주가 달리고는 한다. 잘 보면 히트곡이 끊이지 않았는데도. ‘2 different tears’, ‘Be my baby’, ‘Like this’… 전성기와는 격차가 있다고 한들 성공 가도는 끝까지 계속되었다.
대중 반응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원더걸스는 언제나 위기를 음악으로 타개했다. 멤버들의 제작 참여가 개시된 2011년 < Wonder World >로는 놀라운 성장을 보여 해외 활동이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입증했고, 긴 공백기와 라인업 변동 후 발매한 < Reboot >와 ‘Why so lonely’에서는 밴드 포맷을 선택해 흔치 않은 변신 사례를 제시했다. 여성 솔로 가수 신에 공고한 캐릭터를 남긴 선미를 배출하기까지. 이름처럼 놀라웠던 소녀들, 들여다볼수록 남긴 유산이 많다. (한성현)

소녀시대(Girls’ Generation)
“널 이 느낌 이대로” 사랑하겠다는 의지는 사춘기에 정점을 찍고 수그러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구적인 혼이 담긴 아름다운 노랫말을 남기며 대중의 가슴에 식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꽃피웠다. 꺾이기를 거부하는 순백의 희(喜)와 애(愛)가 광장에 울려 퍼지는 연대 의식을 표방,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를 만들었다. 100세가 되어도 소녀 같은 심성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운 신성(神聖), 소녀시대다.
거대한 영향력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그만큼 많은 곳에서 회자됐다. 모두가 안다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자명한 사실이다. 그 인기는 치유의 서사에서 왔을 테다. ‘소원을 말해봐’, ‘Mr. Mr.’, ‘힘 내!’ 등 다수의 대표곡에서 이들은 듣고 있을 바로 당신을 응원한다. 그 격려에 힘입은 소년, 소녀들이 사회를 일굼으로써 ‘소녀시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앞으로도, 영원히 소녀시대!”는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정기엽)

아이유(IU)
돌이켜보면 순수하고 결정적인 낙하였다. 춤추며 노래도 곧잘 하던 소녀는 등장 이후 예상치 못한 색으로 우리를 물들여 왔다. 또렷한 가치관을 노랫말에 담는 싱어송라이터의 알을 깨고 나왔고 3단 고음의 목소리도 뜻밖에 연기자의 대사로 변성해 희로애락을 전한다. 훗날 이 기적을 추종하는 신도들 뒤 붙은 ‘병’이라는 시기 질투의 칭호는 연보랏빛 신화를 직접 구상한 자에게 뒤따른 가장 인간적인 수식어다.
완성형 아티스트는 자신감과 겸손의 균형이 만든다. ‘분홍신’과 같은 미디어 스토리텔링에도 열성을 다했던 아이유는 대중가수로서도 출중했지만 근시안적인 히트곡만 남발하지 않았다. 김창완과 다시 부른 ‘너의 의미'는 국내 포크를 향한 존경의 표현이고, 윤상, 김현철, 최백호와의 동행은 기성세대를 향한 수줍고 당돌한 노크. 내면에 태동하는 문학성이 빛나고 있었음에도 서정성과 팝 선율을 차별 없이 갈고 닦은 까닭은 자아를 내세우면서 지켜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를 또렷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거닐기 좋은 조화로운 화원이었다. 한국 가요 리메이크 시리즈 < 꽃갈피 >는 계절마다 만개했고 내는 음반마다 싱그러운 가지와 줄기가 되었다. 누구나 이곳에서 금요일을 기다리다 하루의 끝을 맞았고 봄, 사랑, 라일락을 떨구다 나른한 가을 아침을 즐겼다. 그가 세운 목차는 곧 세대의 성장이다. 그를 따라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간다. ‘스물셋’의 도도한 도발이 ‘팔레트’의 후련한 체념이 되고, 손수 쓴 ‘밤편지’를 띄우다 ‘삐삐’를 외치며 쏘아붙이는 법도 나란히 깨달은 지 십여 년. 숱한 굴곡을 함께 하며 넉넉하게 청춘을 잃었다. (손민현)

투애니원(2NE1)
2009년의 걸그룹 시장은 후크송 열풍과 더불어 두 양상으로 복기가 가능하다. “덜 걸치는 게 미학이요, 더 드러내는 게 상책이라”를 천명하던 부류와 “열심히 준비한 우리 친구들, 얼마나 귀엽고 깜찍하게요”를 습관처럼 내뱉던 반대쪽. 물론 각 콘셉트에 맞춘 견고한 이미지로 대중의 호응을 쟁취한 팀도 있었으나 한발 물러서 바라본 전경은 엇비슷한 잔상의 연속이었기에 어딘가 텁텁한 끝맛이 남았다. 그 대척에서 투애니원이 포착한 건 탈규격과 비정형의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투애니원이 적소마다 날린 한방은 선명하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 공주 옷과 구두가 아닌 스카잔과 운동화와 같은 스트릿 패션으로 기억하는 차별화된 스타일링은 멤버들의 뛰어난 실력과 결합해 기성세대의 눈길까지 빼앗았다. 진수는 메시지다. 누군가를 홀리기 급급한 추세는 물론 막연한 애교, 애정 갈구 등 ‘나를 잃어버린 관계’가 주를 이룬 와중 투애니원은 소신과 기개를 외칠 줄 알았다. ‘Fire’, ‘I don’t care’, ‘내가 제일 잘 나가’는 그 역사적 산물이다. 여성성 중심의 걸 파워 시대를 맞이한 작금의 시류를 떠올려보라. 투애니원이 진작에 걸었던 길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동규)

빈지노(Beenzino)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 래퍼 빈지노는 손쉽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힙합 듀오 재지팩트 이후 솔로로서 커리어 시작을 알린 < 2 4 : 2 6 >는 그에게 청춘의 아이콘이란 칭호를 부여했다. 연인 관계의 모호함을 어항 속 물고기에 투영한 ‘Aqua man’은 많은 이들의 공감과 반응을 샀으며 삶의 가치를 상기하는 ‘If I die tomorrow’와 재지팩트로서 발표한 보너스 트랙 ‘Always awake’에선 젊은 사상가의 인생철학을 녹여냈다. 힙합 신에서 주목받던 슈퍼 루키가 당대의 청춘 정서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달리, 반, 피카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양 매 순간 새로운 화풍의 음악을 그려내었다. 일리네어 레코즈와 함께 한국 힙합과 머니 스웩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도 본유의 미적 감각으로 점철된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한 입체적 행보였다. 이후 정규 2집 < Nowitzki > 속 삶의 변곡점을 지난 성숙함이 그의 음악에 깃든 수많은 젊음을 인생의 다음 단계로 인도하기까지. 외적 확장과 내적 탐구를 통달한 작가주의 뮤지션 빈지노는 힙합 신의 젊은 거장이다. (박시훈)

지코(ZICO)
차트 상단에서 지코 이름 찾기는 연례행사가 되었지만 실상 비현실적인 과업이다. 촉망받던 힙합 유망주, 블락비의 리더로 출발선에 선 그는 15년에 달하는 가요 게임을 설계해 왔다. 당대 히로인과의 유려한 조화 ‘Soulmate’와 ‘Spot!’은 물론 한국 정서 맞춤형 발라드 ‘사랑이었다’와 ‘꽃길’ 모두 지코의 작업실이 원산지다. 시대를 읽은 '아무노래'로 새 산업을 창조하더니 K팝 대항해 시대에도 적응 완료. 멜로디와 리듬을 균등히 지배하고 가요와 힙합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중가요와 높은 장벽을 둔 힙합계에 진격했던 쾌감도 충격이었다. 더콰이엇과 제이통 등 신의 중심과 꾸준히 교류하며 결국 깨부순 담벼락의 잔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선봉장이자 힙합 대중화의 최전선에서 ‘거북선’이 몰고 온 파도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자신감에 충만한 힙합 팬이 치켜든 팔짱을 내려놓기 충분한 랩 임팩트. 걸출한 래퍼들 사이 강세는 유별났고 가사와 라임은 탄탄하고 날카로웠다. 한계, 도전, 증명, 확장의 고리타분한 순서를 마음대로 정의한 독자적 레이스. 결정적으로 지코는 이 모든 순간을 성실히 즐겼다. (손민현)

장범준
가수가 어떤 악기를 유행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증거다. 2010년대 초반의 통기타 붐은 인디 밴드와 오디션 프로그램의 부상 등 여러 요인이 모여 나타난 결과였지만 그 중심에 장범준이 존재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도 파도에 올라타 손가락 끝이 얼얼하도록 연습하며 무대에 서는 광경을 꿈꿨다. 어리숙한 첫인상의 청년들이 만든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지기까지, 그렇게 버스커 버스커는 가요계의 한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불멸의 히트 싱글 ‘벚꽃엔딩’을 제하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 < 슈퍼스타 K3 > 당시 ‘정류장’, ‘동경소녀’ 등 기존 명곡을 자신의 색채로 재해석하며 보여준 편곡 실력, 청춘의 설렘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사 솜씨, 모든 곡을 직접 빚어냈다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번쯤 노래방에서 따라 불러본 친숙한 멜로디. 그전까지 필수처럼 여겨졌던 고음 보컬이 아니어도 세대 경계를 허물고 폭넓은 인기를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기교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야말로 진정한 대중음악이다. (박승민)

방탄소년단(BTS)
잘 될 줄은 알았다. 2015년 홍콩 마마(MAMA) 무대에서 그들을 본 뒤 돌아와 < 배철수의 음악캠프 >에서 그 경외와 충격, ‘공포’를 털어놓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혹시 방탄소년단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와~ 어떻게 그런 퍼포먼스가...!!!” 실로 장엄한 진동과 전율의 황홀경. 관객을 휘어잡는 다이너마이트 군무와 객석의 난리는 곧 막대한 성공을 창출, 서구도 오랜 배제를 거두고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란 팻말로 수용을 단행해야 했다. 이렇게 대단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세계무대로의 ‘진격’은 방탄의 DNA. 디지털 시대의 무국적적 유동성을 가로막는 K란 국적 부여가 비문화적일 수 있음에도 글로벌에의 강한 열망이 반영된 듯한 명명 ‘K팝’은 방탄소년단에 의해 보통명사화 되는 대대적 성과를 창출했다. K팝의 성배는 BTS가 들었다. 그들을 K팝 아닌 ‘BTS팝’으로 여긴 아미는 퍼포먼스 외에 세대 눈을 맞춘 위로와 감동이란 서사의 광폭한 위력을, 그게 청춘 감성의 둥지와 팬덤을 주조한 발화점임을 주지했다.
이후 K팝의 다양한 시각 청각 촉각의 시도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궤도를 이루며 공전했다. 또 하나 지속적 투자와 누리소통망 활동이 거들면서 21세기 성공은 복합조건 개입의 결과임을 시사했다. 그 시작이 ‘매그니피센트 세븐’의 피 땀 눈물임을 인식하며 K팝의 이 화양연화와 세계 문화 위계에 가한 균열, 심오한 진술과 레토릭이 그들로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멀었던 빌보드와 그래미와의 거리를 이토록 가깝게 좁혀준 그들에게 정중히 고개 숙인다. 덕분에 K팝은 봄날이다. (임진모)

악뮤(AKMU)
등장부터 능력 발휘 ‘200%’였다. 많은 에피소드를 쌓아가는 과정마다 작은 별들이 선사한 독창성은 항상 우리 곁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다. 찬혁의 독특한 관점이 녹아있는 가사에는 늘 보편적인 공감대가 묻어있고 앨범마다 스타일이 각양각색임에도 수현의 음색은 중심을 잡아준다. < K팝 스타 >에서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던 ‘악동’뮤지션부터 이별까지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악뮤’까지, 우리와 함께 자라면서도 언제나 변치 않는 두 고래는 헤엄하던 대로 계속 헤엄친다.
넘치는 재능은 그룹 활동만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찬혁은 솔로 앨범과 이찬혁비디오, 밴드 바보(BABO)까지 넘나들며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2년이 넘는 공백 속 < 비긴어게인 >과 < 볼륨을 높여요 >에서 흘러나온 수현의 음성은 소중했다. 두 명의 서로 다른 능력뿐만 아니라 현실 남매의 모습 속에 엿보이는 돈독한 우애까지, 듀엣의 형태에도 균형 잡힌 배가 될 수 있었다. K팝에 상쾌한 공기를 불어 넣은 그들은 지금도 스스로 만든 바람에 힘입어 독자적인 항해를 진행 중이다. (이재훈)

잔나비
근래의 밴드 붐 바람은 잔나비로부터 불어왔다. 2019년 < 나 혼자 산다 > 출연 이후 대중의 눈길에 든 이들은 < 전설 >을 통해 인디 밴드 역사상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안았다. 마니아층은 꾸준히 존재했으나 세대를 아우르는 포용력까진 닿지 못했던 인디 록 신에 새 숨을 불어넣은 것이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와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은 오랜 기간 차트에서 살아남아 풋풋하고 실수 많은 청춘들을 위로했다. 이는 곧 실리카겔과 웨이브 투 어스 등이 대표하는 작금의 새로운 물결, 그 초석으로 남았다.
집단적 노스탤지어를 자극한 빈티지한 사운드로 뉴트로(New+Retro)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빠르고 복잡한 현대로부터 과거로의 회귀는 젊은 세대에겐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향한 동경을, 기성세대에게는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동화적이고 뮤지컬스러운 작법과 우리말 기반의 아름다운 노랫말은 덤. 잔나비는 이 모든 요소의 집합을 완수하며 대중의 인식 속 인디 밴드의 새로운 대명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장대휘)

트와이스(TWICE)
나름 열심히 살아온 여동생은 TV 속 초등학교 동창 나연을 보며 “저렇게 화려하게 살아야 하는데” 농을 던졌다. 세계를 호령하는 팝스타가 된 졸업 앨범 속 똘망한 눈의 소녀는 내 청춘에도 뭉근하게 녹아있다. 노래방에서 수차례 선곡된 ‘Ooh-ahh하게’는 복학 두 번째 학기 어색한 기운을 씻어주었고 ‘Cheer up’은 푸른 캠퍼스 잔디밭에 싱그러움을 더해주었다. 다현의 베이비페이스와 ‘TT’를 좋아했던 후배 녀석도 떠오른다.
21세기 K팝 대전장에서도 존재감은 남달랐다. 팍팍한 세상과 사회를 밝게 하는 명랑·발랄 기조에 범국민 행복지수가 최소 한 단계 상승했으며 무수한 히트곡에 충격과 누적도 압도적이었다. 아이돌 그룹의 짧은 전성기와 대비되는 생명력과 지속성으로 일본 열도를 휘어잡은 다국적 9인조는 공연과 음원 양쪽으로 북미 시장까지 휘감으며 월드와이드 K팝 걸밴드임을 확고하게 했다. 트와이스는 언제나처럼 우리에게 곱절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줄테다. (염동교)

블랙핑크(BLACKPINK)
첫 등장부터 도도하고, 당당하고, 냉정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얼핏 건방져 보였지만 예능에 출연한 로제, 지수, 리사, 제니는 삼촌 말을 잘 듣는 조카처럼 순진하고, 엉뚱하고, 순수했다. 역시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이미지처럼 블랙핑크의 노래에는 차가운 온기와 뜨거운 냉정, 흥겨운 절제와 처연한 흥분이 공존하지만 그들의 모든 노래가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Forever young’과 ‘Lovesick girls’, ‘Stay’, ‘불장난’ 등을 듣고 나는 K팝 여제들의 무한한 자생력과 영구적인 생명력을 확신했다.
2016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K팝 걸그룹의 리더 자리를 놓치지 않은 블랙핑크의 파워는 뮤직비디오로도 입증된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How you like that’, ‘마지막처럼’, ‘붐바야’, ‘Kill this love’, ‘뚜두뚜두’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서 모두 10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해 K팝의 매력을 전파했고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워너비들을 양산했다. 훗날 역사는 위대한 걸그룹으로 슈프림스, TLC, 스파이스 걸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과 함께 블랙핑크도 언급할 것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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