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서 성장으로‥ 고통에도 '연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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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8년 전 삶을 뒤흔든 끔찍한 참사‥평생 끝나지 않을 고통을 안게 된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그 상처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요?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 중에는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재난이 벌어질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들을 도우면서 고통을 나누고 있는데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면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성장'으로 바꾸려는 이들을 조재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응급 구조사로 일하고 있는 25살 애진 씨.
주로 심정지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합니다.
애진 씨의 손목에 노란리본 타투가 보입니다.
먼저 떠난 친구들을 잊지 않기 위해 새겼습니다.
애진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75명뿐이었던 생존 학생 중 한 명입니다.
원래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그날 이후 응급구조사로 바뀌었습니다.
[장애진/응급구조사]
"만약에 이런 참사가 없었으면 제 꿈이 아예 바뀌는 거잖아요.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일도 없었던 거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면서 그날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심정지 환자 오거나 그러면 저희가 처치를 다 했는데 다행히 살아서‥걸어서 나가는 경우나 이런 걸 봤을 때 좀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제 20대 중반이 된 생존 학생들 다수는 경찰,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등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참사의 상처를 수습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려는 겁니다.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겪은 피해자가 고통을 이겨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외상 후 성장'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김은지/마음토닥의원 원장, 단원고 '스쿨닥터']
"어느 순간 '내가 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한테 안전함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생존 학생뿐 아니라 유가족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이 확인됩니다.
재작년 코로나 초기, 대구에서 감염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꺼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울진 산불이나 구례 홍수 같은 재난 현장도 어김없이 찾아가 아픔을 함께했습니다.
[강지은/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재난 관련) 공부를 되게 많이 해요. 이런 큰 일을 겪었을 때 옆에 가서 이야기 들어주고 손잡아주고 연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렇다고 아픔이 가신 건 아닙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를 7년간 추적 연구한 백서.
세월이 흐르면서 우울 증상과 불안 문제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아 보여도, 일반인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훨씬 나쁜 수준이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아내는) 애들이 와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 들리면 무의식중에 따라가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집을 못 찾아온 적도 있어요."
특히 유가족들의 알코올 의존 문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채정호/서울성모병원 교수 (세월호 추적연구)]
"술을 굉장히 많이 드시면서 행동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고 충동성이 높아지시는 분도 계실 거고요. 곁에서 같이 지켜보기도 힘들 정도의 어떤 심한 증상을 가지신 분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치유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안고 살면서도, 더 이상의 같은 아픔은 없어야 하기에 다른 이들의 고통도 나눠지려는 사람들.
시간이 흐르면 참사도 잊혀지는 거라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생각들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김승섭/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내가)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는 자각이라고 하는 것들은, 계속 의도적으로 되새김질하지 않으면 잊혀지고 없어지는 겁니다."
8주기뿐 아니라 9주기, 그리고 10주기 이후에도 우리가 세월호를 얘기해야 할 이유일 겁니다.
MBC뉴스 조재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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