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657명 사망 첫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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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 참혹함 때문에 한국의 아우슈비츠로까지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975년부터 12년간 부랑인과 공안사범, 일반시민과 어린 아이들까지 마구잡이로 끌고가 수용소를 방불케하는 민간 시설에 가둔 뒤 강제노동과 구타, 성폭행은 물론 살인과 암매장까지 자행해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형제복지원에 시민을 수용하는 과정엔 경찰과 공무원들이 동원됐고, 정부는 연간 수십억원의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1987년 수용자 수십명이 탈출하면서 비로소 형제복지원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지난 35년간 국가기관의 진상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우여곡절끝에 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제 1호 사건'으로 조사했고, 오늘에야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희생자 수는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도 훨씬 많았고, 국가차원의 축소, 은폐 정황도 확인됐습니다.
먼저 윤수한 기자의 보도부터 보시겠습니다.
리포트
1970년대 중반부터 '안전한 거리를 만들겠다'며 시작된 대대적인 단속.
부랑인과 공안사범뿐 아니라 퇴근길 시민과 길을 잃은 아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형제복지원에 끌려갔습니다.
길게는 10년 넘게 구타와 성폭력 등 가혹행위를 당하며 강제노동에 동원됐습니다.
[이동진/형제복지원 피해자]
"냉동차, 탑차 그런 걸 가지고 와서 사람들 막 잡아갔어요. 7년 간 거기서 생활하면서‥"
불법 구금된 전체 수용자만 3만 8천여 명.
저항하면 맞거나 정신과 약물을 투여당해야 했고, 강제노역 급여도 수시로 빼앗겼습니다.
이 기간 사망자만 최소 657명이 확인돼,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100명 이상 많았습니다.
당시 국민 사망률에 비해 최대 13.5배 높은 수준입니다.
[이재승/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행방불명, 강제실종에 해당하는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많은 경우에 사망진단서가 조작되었고요."
불법 구금 과정에 정부기관이 개입한 증거들도 최초로 드러났습니다.
1986년, 경찰은 5백원에서 3천원을 훔친 소년범들을 관할 소년부가 아닌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했습니다.
같은 해, 불온 유인물을 소지했단 이유로 구류를 선고받은 시민도, 유치장이 아닌 형제복지원으로 넘겨졌습니다.
[이재승/진실화해위 상임위원]
"대부분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형제복지원에 넘겼다는 이런 말이 나오고 있고요."
보안사령부도 형제복지원에 대해 "교도소보다 강한 통제 기관으로 수용자 대부분이 전전긍긍한다"고 평가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는 1981년 "구걸행위자를 일제 단속하라"며 부랑인 강제 수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했고, 6년 뒤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운영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책임자 처벌을 사실상 만류하기도 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회복 지원방안 마련을 권고했습니다.
MBC뉴스 윤수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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